교육안내



한문교육

한자는 중국의 글자가 아니다. 참으로 위대한 우리 조상께서 창제한 문자이다.

예절교육

대동의 예, 소강의 예, 인정과 인간의 의무

역사교육

이러한 국제화 시대에 보편 타당한 역사관으로 우리의 역사를 보아야 하고, 일제 에 의해 망가진 우리 역사의 참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한자는 중국의 글자가 아니다. 참으로 위대한 우리 조상께서 창제한 문자이다.

  • 결승문자의 탄생(結繩문자)
      복희씨(伏羲氏)께서 천자의 이치를 살피어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만물에서 취하여 처음으로 8괘(八卦)를 만들어 결승문자(노끈을 맺어 기억함)로 대신케 했으니 그 원리인즉 음, 양에서 비롯되었다.

  • 신지(神志)문자의 탄생(象形문자, 과두문자)
    • 神志씨께서 환웅시대에 비로소 글자를 만들었다.
        揆園史話(규원사화)에 보면 '신지는 본래 환웅님의 명령 출납자였으나 일찍부터 글자가 없어 환웅님의 말씀을 적어둘 방법이 없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하루는 사냥을 나가던중 한마리 암사슴을 발견하고서 방향을 알게된, 순간 깊이 생각하고 감탄하여 이르길, "말(語)을 남겨두는 법은 오직 이와 같을 따름이다" 하였다. 사냥에서 돌아온 그는 오랜시일이 걸리지 않아 문자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이 옛글자의 시작이다. 곧 이문자가 상형문자이며 글자의 모양이 대나무를 깎아 붓을 사용함에 붓끝이 처음 닿는데는 둥글고 크나 끝은 작고 가늘어 올챙이 같다고 하여 이를 과두문자라고 했다.
    • 이 과두문자가 1000여년 이상을 통(通)해 오다가 중국 주(周)나라 선왕때 태사 주가 전서(篆서)를 만들었다고 하여 주문(주文)이라 하였고 진(秦)나라 정막(程막)이란 사람이 예서(隸書)를 만들었고 진시황이 분서갱유후 한나라 선비들이 다시 글자의 모양을 변경하였으니 이것이 해서(해書: 정자체.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자체)이며 한나라때 변경하였다고 하여 한문(漢文)이라고 하였다.
    • 대저 문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의 조상인 신지씨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이 '과두문자'는 범어(梵語)와 서로 비슷하였고 과두문자가 진(秦), 한(漢)시대에 지금의 문자로 변경되었다고는 하나 표의(表意)문자인지라 그 뜻은 변치않았거늘 현대인들이 이것을 모두 한나라의 글자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 우리 한반도는 한(漢)이 대륙을 통일했을 무렵부터 한나라의 문풍(文風)에 휘말려 과두문자가 통(通)하지 못했고 위(魏)나라때는 나라가 천(千)조각으로 분할(分割)되었기 때문에 그 흔적 자체가 서로간 불통로(不通路)가 되므로 사라진 것이다.
    • 증거
      • 단국 조선 12대 아한(阿漢) 임검때 '유위자'라는 성인(聖人)이 신지(神志)문자가 민멸될것을 예언한 부분이 단기 고사(壇紀古史)에 기록됨
      • 황해도 구월산 마한촌(馬韓村)에 고대 국문비가 있으며 글자의 형상이 범어(梵語)와 비슷하다.
      • 장벽산 흥안령(興安領: 송화강 북구)에도 또한 국문의 옛비석이 있다.
      • 지리산 화개면 소개 단천석(壇川石) 앞에 의 , , 의 삼자(三字)가 조각되어 있어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는 '이것이 단군 왕검의 천복인(天符印) 3개에 각각 새겨져 있던 글자이다'하고 하였다.
      • 여진족들이 나라를 표현할 나라국字를 으로 표현하고 추장을 으로 표현한것은 발해국이 전해준 '신지문자'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글이 비록 표음(表音)문자라고 하나 그 깊고 오묘함이 다른나라 글자에 비할바가 없이 훌륭하다. 예컨데 우리가 ㄱ이라고 (기역) 발음하면 입안의 혀(舌)가 ㄱ字체로 되는것이다. 그런데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때 참고한것이 결국은 우리 신지 조상께서 창안한 음양의 원리를 이용한 상형문자(과두문자)이니 한문은 우리의 빛나는 글이며 중국 한나라때 글자를 약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갔다하여 한문이 중국문자라고 하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1. 대동(大同)의 예(禮)
      큰 도리가 대도(大道)가 실시되고 있던 시대(황금시대)에는 세상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내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고, 내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노인은 나머지 세월을 즐기고 젊은이는 그 능력을 발휘해서 활동을 하고, 어린이에게는 따를 사람이 있고 의지할데 없는 과부나, 고아나, 불구자나 폐인은 보호를 받았다. 사람들은 재물이 땅에 흩어져 있는것을 보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내 주머니에 숨겨 두지는 않았다.   또한 사람들은 여유있는 노동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 사이에 무슨 모략이 있을리가 없고 도둑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밤에도 바깥문을 닫을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大同. 즉 큰 공동체의 시대였다. 정녕 모든이들이 禮를 갖추고 있으니 즉 禮가 필요 없는 시대였다.

  2. 소강(小康)의 예(禮)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큰 도리는 이미 실시되지 않는다. 세계는 분할되어 여러 권세에 속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다만 내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고 내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긴다. 그들은 각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재물을 구하고 노동에 종사한다. 따라서 禮와 정의의 원리가 사회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 원리에 따라서 사람들은 통치자와 신하의 신분을 지키고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내외 사이에 화합해서 사는 도리를 가르치고, 제도를 만들어 여러 촌락이 단결해서 서로 의지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 禮가 필요한 시대로 바뀐것이다. 그리하여 이 禮의 원리를 침해하는 사람을 공적(公敵)이라고 해서 탄핵을 받아 그 지위에서 쫓겨났다.   이를 가리켜 '소강'의 시대 즉 '작은 평화의 시대'라고 부른다.

시경(詩經)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보아라 쥐도 몸집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이 어찌 禮를 모를까. 사람이 禮를 모르면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성인(聖人)이 세계를 한 가족으로 보고 하나의 국가를 1人으로 볼 수 있는 까닭은 (어떤 한 사람의 인정(人情)에 있어서 진실인 것은 모든 사람에 있어서 진실이다) 그가 규칙을 정할적에 아무렇게나 마구 만들어 내는게 아니라 참으로 인정(人情)을 이해하고 인간의 의무를 명백(明白)하게 하고, 인간에 관해서는 모든 선과 악을 명료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자각이 있기 때문에 규칙을 정할 수가 있다.


인정(人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두려움,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욕심.
이 일곱가지로 되어 있다.(태어날때의 본능이다)


인간의 의무란 무엇인가?

  아버지의 자애로움, 자식의 효성, 형의 아우에 대한 사랑, 아우의 형에 대한 존경, 남편의 바른 행실, 아내의 평화로움, 연소자의 순종, 통치자의 인자함, 신하의 충성, 이것이 사람의 10가지 도의(道義)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좋은것은 일반적 신뢰와 평화이고 인간에게 있어서 나쁜것은 영리(營利), 강탈, 살인을 위한 싸움이다. 그러므로 성인이나 이상적인 가장(家長)이나 통치자는 禮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한 사람의 일곱가지 감정과 10가지 도의(道義)를 함양할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상호간의 신뢰와 평화와 겸양을 권유할 수가 없다.
  영리와 강탈을 위한 싸움을 막을 수가 없다. 음식과 성욕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며 죽음과 가난과 재난은 인간이 가장 미워하는 불행이다. 그러므로 욕망과 불행을 경계하는 마음은 사람의 내부에 깃들어서 그를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런 동기는 마음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보통때는 바깥으로 표시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사람의 마음을 탐구함에 있어 그 하나로써 전체를 규명할 수 있는것은 다만 [禮]가 있을뿐이다.
  그러므로 [禮]의 인간에 대한 관계는 누룩의 술에 대한 관계와 같다. 군자는 그것을 좀더 많이 가지고 있고, 소인은 좀더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나 덕(德)을 지닌 통치자는 인정(人情)의 모든 움직임과 표현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의무와 [예]의 질서를 함양한다.
  인정(人情)이라는 것은 성인이나 덕을 지닌 사람에 의해서 재배되는 밭과 같다. 그는 禮로써 밭을 갈고 의무의 씨를 뿌리고 교육과 학문에 의해서 가꾸어 진실한 인간성을 수확하고 음악에 의해서 그것을 즐긴다.

  팔 다리가 잘 발육을 하고 피부가 깨끗하고 체중이 넉넉하면 그것은 곧 개인 생활의 건강이다. 부모와 자식이 친목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내외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은 가정 생활의 건강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가 법을 지키고 낮은 지위에 있는 관리가 청렴결백하여 맡은바 책임을 다하며 군주와 신하가 서로 힘을 합치면 그것은 국가 생활의 건강이다.
  통치자는 덕을 그 몸을 싣는 수레로 삼고 신하는 겸소한 태도로 서로 만나고 법을 지키어 상호간에 조심을 하고 학자는 진리와 규준을 밝히기 위해 진지하게 의논을 하고 백성은 모두 평화속에 융합을 하면 그것은 온 세상의 건강이다.

이같은 질거가 대순(大順)이며 곧 조화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화, 大順은 禮를 바탕함이며, 곧 禮는 모든 道理의 결실이다.

우리 역사의 참모습

  우리는 흔히 역사를 해(日)와 달(月)이 심판하는 재판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역사란 오늘의 거울이요, 내일의 길잡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곧 개인과 사회와 민족 공동체는 자기들이 살아온 역사에서 새로운 힘과 교훈을 구체적으로 만나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장구하고 풍요롭습니다. 구석기 시대부터 이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오면서 고유한 문화와 우수한 문명을 일구어 났습니다. 외부로부터 숯한 침략을 당했고 내부의 갈등도 없지 않았지만 결집된 힘을 발휘하여 자주 민족 국가의 면모를 지켜왔습니다.

역사란 특정인이나 특별한 계층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오늘의 현실 생활과 동떨어져 존재한다면 그것 또한 바람직한 역사의 모습이 아닐것 입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교육하되 오늘 우리의 현실과 더불어 생각하는 사관(史觀)이 중요합니다. 우리만이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국수적 민족주의 또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될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지구적 환경과 연대하여 세계人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화 시대에 보편 타당한 역사관으로 우리의 역사를 보아야 하고, 일제 에 의해 망가지고 쪼개지고 가리워진 우리 역사의 참 모습을 찾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청학동 난야서당이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는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