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야서당



왜? 도시의 아이들이 청학동 서당으로 유학을 오는가?
인간은 저마다 하늘로부터 품부받은 성(性)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비교해보면, 얼굴 생김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며, 취미가 다르고, 두뇌능력도 다르고, 예술적, 학문적 능력도 다릅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육제도는 이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에게 솥단지 하나씩을 주면서 똑같은 밥을 지어내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생각도, 어떠한 여유도 부릴 틈이 없습니다.
오직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일류대학만이 대학교이며, 그 대학을 졸업한 후 일류 직장에서 근무해야만 사람이요,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공식을 정해놓고 우리 아이들을 내몰고 있습니다. 그러한 결과, 이 게임의 법칙에 적응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의 낙오자로서 거리를 배회하고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가정을 지켜야 할 부모 역시 과다한 사교육비에 내몰려 부모로서의 존경과 어른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것들을 포기한 체 오로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하루해가 저뭅니다. 피곤한 육신은 여유로움을 찾아야 하지만 사회는 그것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직장의 머슴이 된 부모는 늦은 저녁의 퇴근이 일상이고 보면 인간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따스한 가정, 사랑이 흐르는 가정은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보통 사람은 생각을 극복해서 聖人이 되고, 聖人은 생각을 함부로 해서 보통 사람(凡人)이 된다 (惟狂人克念作聖惟聖妄念成狂)’고 했습니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마저도 외면한 체 부모 스스로 부모의 가치를 훼손해가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이 세상을 살아감에 ‘가장 적극적인 나.’로 전환하는 것을 잊어버림으로서 자식의 스승이 부모이거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마음의 거울, 행동의 거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풍토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면서 자식교육을 진정으로 고민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를 공경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스승께 예를 갖추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냄새가 나는 자식으로 키우려는 부모는 대안(代案)교육을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대안교육기관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또한 현명하신 분들이 그 곳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곳이 바로 우리의 전통 사상인 인성과 예절을 가르치는 서당이 존재해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도회지에서 이곳 청학동으로 유학을 온 아이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만, 편식, 행동발달장애, 이기적인 사고, 거친 말씨, 거만한 행동, 도벽, 컴퓨터 게임중독 등...
아마도 성인(成人)이 이러한 상황이라면 의사의 정신적 치료와 감호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아이들은 개별적 차이가 있으나 서당의 수행생활을 통해서 서서히 자신의 예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본모습의 뽀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들, 그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요?
더욱이나 변화된 자식과 부모가 상봉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은 진정 인간의 참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제도권 내에서의 교육, 도회지에서의 교육이 포기한 그 아이들을 변화하게 한 것은 정녕 무엇일까요?




배우는 자는 정신을 가다듬어서 뜻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이 필요할까요. 바로 대자연의 때묻지 않은 환경입니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병풍처럼 서 있는 지리산의 영봉(靈峰)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차츰 산을 닮아 갑니다.
또한 철따라 피는 꽃대궐 속에서 아이는 예쁘고 밝은 꽃을 닮아갑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누구도 먹거리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야 할 식탁이 점점 건강을 위협하는 패스트푸드라는 “공포의 식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식탁은 건강이라는 아름다운 색을 연출합니다.
생명은 놀라운 色의 파동이며 변화입니다. 아픔과 질병은 色의 이그러짐이며 퇴색입니다. 결국 건강은 좋은 빛이며 色입니다. 좋은 음식이란 바로 숨결과 살결을 아름답고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온 서당 가족이 빙 둘러앉아 먹는 밥상은 그 자체가 평화요, 조화로움입니다. 하루의 삶을 이야기하고 손수 텃밭에서 가꾼 채로, 인스턴트 음식이 빠진 정성스러운 조리음식, 손수 담근 된장, 고추장 등...
곧 자연의 음식이란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짠맛의 오미(五味)의 조화로 빚어집니다. 오미(五味)는 오감(五感)을 지배하고 五感은 인간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성정(性情)을 지배하여 인격을 만듭니다. 음식의 균형이 깨지면 몸에 병이 생겨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은 음식과 대화하고 그 속에서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옛말에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입볼이 터지도록 맛있게 음식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삶을 살아갈 때 가장 기쁜 것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인스턴트 음식은 비록 맛있는 음식일지언정 그것은 창자를 녹이고 뼈를 썩게 하는 독약입니다.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의사도 고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식탁은 건강한 생각을 빚어내고 정성스러운 행동으로 표현됩니다.(자세한 내용은 ‘자연농법과 서당교육’이라는 본 훈장의 글을 참고하세요)





사람은 자신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곧 마음 깊은 곳에서 옳음과 그름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옳지 못한 것이 마음속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의 병사’를 키우는 것입니다.

라는 책에서는 이것을 心兵(심병)이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南冥 曺植 선생은 <신명사도: 神命舍圖>

에서 ‘마음속에 태양보다 밝은 전등불을 켜고 늘 항시 헛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정성스러움이 敬(內明者敬)이요, 그렇게 하여도 내 몸 밖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 나올 때, 그 것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하는 단호함을 義(外斷者義)라고 하였습니다.
늘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삼가고(勤愼),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愼其獨也) 훈장님을 늘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곧바로 생각한 바를 실천하고 행동해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서당의 수행 생활을 통해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인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