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야서당



조선숙종代의 대학자이자 南人의 領首였던 허목(許穆, 1595~1682)은 그가 지은 「지리산청학동기(智異山靑鶴洞記)」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남쪽 지방의 산 가운데 지리산이 가장 깊숙하고 그윽하여 신선이 사는 산이라 부른다. 그윽한 바위와 뛰어난 경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유독 쌍계사 입구 돌문 위에서 옥소동쪽 골짜기를 지나는 곳은 모두 깊은 물과 큰 돌로 이루어져 사람의 정취가 통하지 못한다.

쌍계사 북쪽 언덕을 좇아 산굽이를 따라서 암벽을 부여잡고 올라가 불일전대(佛日前臺) 돌 절벽 위에 도달하여 남쪽으로 향하여 서면 청학동이 발 아래 굽어보인다.

돌로 이루어진 골짜기에 사방은 가파른 바위요 바위 위에는 소나무, 대나무, 단풍나무가 많다. 서남쪽의 돌로 된 산봉우리에는 학의 둥지가 있는데 산중의 노인들이 전하기를 학은 날개는 검고 머리는 붉으며 다리는 자줏빛으로 생겼으나 햇빛아래에서 보면 깃이 모두 푸르렀다고 한다. 아침이면 빙 돌아 날아올라 하늘 높이 갔다가 저녁이면 돌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오지 않은 지 거의 100년이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봉우리를 청학봉(靑鶴奉). 골짜기를 청학동(靑鶴洞)이라 하였다. 남쪽으로는 향로봉(香爐峰)을 대하고 그 동쪽은 돌 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고 동쪽 골짜기는 모두 층을 이룬 기이한 바위들인데 어젯밤 내린 비로 폭포수 물이 그득하였다.

그 臺 위의 돌에 완폭대(玩瀑臺)라고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못을 이루었다.


또한 이인로(고려시대의 文人)의 파한집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있다.

정중부를 비롯한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1170년) 무릇 갓 쓴 이는 무조건 목을 베어버려 文臣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는데 간혹 살아남은 문신들은 머리를 깎고 중이 되기도 하고 방랑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인로도 이 때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며 더러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신선 같은 세상에서 깨끗하게 살고자 하여 정승을 지냈던 친지와 함께 청학동을 찾아나섰다.

고리짝 속에 송아리 두 마리를 넣고 짊어지고 들어가 큰 소로 키워 농사짓고 살면 속세와 인연을 끊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인로 일행은 책을 통하여 아는 바를 토대로 지리산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청학동은 찾을 수 없었다.

이인로는 화엄사를 거쳐 화개면에 이르러 신흥사(神興寺)에서 머물러 갔는데 그 일대의 경치가 하도 빼어나 신선들이 사는 곳 같았다. 그러나 결국 청학동의 정확한 위치는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그는 청학동은 실제로 있는 곳이 아니고 이상향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청학동' 하면 사람들은 흔히 민속마을이나 조선시대 마을이라고 알고 있으며 조선조의 모습이 아직도 내려오는 마을이라고 속단하고 만다. 하지만 마을의 일부가 유불선 합일 갱정유도(儒彿仙 合一 更定儒道)라는 신흥민족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세상이 잘못 전해져 단지 민속마을로 생각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청학(靑鶴)이라는 용어 자체가 선사상(仙思想), 선도문화(仙道文化)와 관계있으며, 청학동이란 선도의 세계를 지칭한 것이며 선도는 고대의 수두(蘇塗:소도)에서 나왔다. 우리 배달겨레 에게 외래의 종교(불교)와 사상이 유입되기 전에는 선도가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체였으며 수두(소도)는 그 세상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는 고구려 국내성(集安:집안)고분들의 벽화를 보면 그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상당수의 벽화가 신조(神鳥)와 신수(神獸)를 그렸으며, 또한 푸른 학을(靑鶴)타고 날아다니는 신선, 봉황과 용을 부리는 뭇 신선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선도 사상이 우리겨레의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오다, 선도문화에 대한 그리움, 즉 우리의 정신적 고향인 이곳 두류산에 머물러서 선도에 이상향으로 꽃피게 된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청학동의 대분의 지명이 선도문화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신봉(三神峰), 삼성봉(三聖峰), 삼선봉(三仙峰), 시루봉, 반월대, 밝단, 터골, 신선대……. 인간이면 누구나 이상(理相)을 갖고 있다.

이러한 마음은 이상향(理相鄕)을 낳았으며, 이러한 이상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처에 산재하여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연명'의「도화원기」에 <무릉도원>이 그 대표적이며 '우보'의「수신기」등이 있다.

또한 서양에서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황금의 대륙<아틀란티스>, 근래에는 '칼붓세'의 詩를 비롯하여 '제임스 힐튼'의「잃어버린 지평선」속의 <상그릴라>에 이르기까지 숱한 마음의 안식처가 펼쳐진다.

하물며 우리민족은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 왔으니 그 얼마나 많은 이상과 한(恨)이 있었겠는가?

적이 결코 찾아낼 수 없던 오복동(五福洞)은 서북인들의 이상향이요, 정성만 들이면 쌀이 나온다는 식장산(食藏山)이 경기인들의 이상향이라면 난리를 피할 수 있고 먹을 것이 많으며, 질병이 들어올 수 없어 신선처럼 오래살 수 있는 청학동은 영호남인의 이상향이다.

또한 평생을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고 밤만 되면 엉금엉금 달려드는 진드기 같은 남편도 없는 <이어도 : 파랑도>는 제주도 해녀들의 이상향이고, 충청인의 이상향인 우복동(牛腹洞)역시 빼 놓을 수 없다.

이처럼 영원한 삶을 살고 행복스러운 삶터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을 망라하고 존재한다.

이상향은 삶의 원천인 것이다.

청학동의 유래를 정확히 규명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을 비롯하여 나말여초(羅末麗初)의 '도선국사' 고려중엽의 '이인로'의 <파한집>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선인(先人)들이 남긴 기록이 전하는 바를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 과 같다.

청학동이란 천하제일의 명승지로서 두류산(지리산)남쪽 기슭에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폭포가 있으며 폭포를 지나면 외석문(外石門)이 있고 외석문에서 내석문(內石門)을 지나 동굴같은 계곡을 10리쯤 걸어가면 주위 40리의 광개평탄한 초전(草田)에 신선들이 살고 있는 별유천지(別有天地)가 나온다.

그 곳에는 청학이 살고 노니는 학연(鶴淵)과 석정(石井)이 있으며, 뒤에는 삼신봉이 높이 솟고 앞에는 백운산 삼선봉이 둘러 있으며 후록에 “석각삼봉(石角三峰)이 병풍처럼 나열하고 해바위와 달바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청학동은 땅이 기름져서 곡식이 잘 되며, 삼재(三災)가 들어오지 못하고 석정(石井)의 물을 먹으면 오래 살고 특히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될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