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야서당



  지리산 외삼신봉 줄기가 마지막 힘을 발휘하여 뭉쳐놓은 조그만 묏봉우리 밑에 다랭이 논이 서너마지기가 있고 그 논가운데 집 한 채가 여유 작작 앉아 있다.
부모슬하를 떠나 멀리 이곳까지 서당교육을 받기 위해 와있는 리나, 한나, 문현 그리고 내 아내와 수창, 현우 두아들 또 한 아이, 내 처남의 외동딸 박지원...

이렇게 8명이 아침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한 끼 식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터전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집 뒤 백평 조금 모자란 텃밭이다.
지렁이, 거미, 개미, 땅강아지, 두더지, 이름 모를 수많은 곤충들의 아우성 속에 쑥부쟁이, 씀바귀 등 온갖 잡초들이 등을 맞대고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풀밭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씀바귀, 쑥부쟁이 더미 속에서 부추가 야들야들 자라고 고추, 봄 배추, 강낭콩, 들깨, 고구마, 감자, 토마토, 가지, 오이, 토란, 옥수수 등이 저마다 자기의 모습을 간직한 체 푸르게 자라고 있다.

아침잠을 깨어 가장 편안한 옷차림을 한 체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쉬엄쉬엄 1∼2분을 걸으면 닿을 수 있는 텃밭, 인간의 예술행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하지만 이토록 깨끗한 수채화를 그릴 수 있는 화가가 있을까?
하루하루 우리 밭의 색깔은 달라진다.
해와 달이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작업해 칠 해놓은 붓질은 그렇게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감동으로 감동으로 밀어 넣는다. 맑음(淸)의 신성성을 말 없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도법자연(道法自然)일 것이다.
온종일 우리밭의 생명들을 위해 빛을 내고도 해 놓은일 적다고 조렇게 조렇게 얼굴을 붉히고서 뒷산 봉우리 너머로 사알짝 숨는 겸손한 해가 보고 싶어 해질녘이면 나는 늘 항상 그 곳으로 걸어간다. 밭둑위에는 브록벽돌 두 개가 있고 그 위에 걸터앉아 나는 우리네 밭을 바라다본다.
검푸른 녹음을 가득 안은 그윽한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말없는 식물들, 말없는 나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둘 사이를 오락가락 전해주는 傳心 통신문을 가득 펼치고 읽어본다.
수년 전부터 나와 아내는 화학비료도 농약도 전혀 살포하지 않고 잡초와 밭작물이 함께 자라게 하면서 자연의 법칙대로 공생(共生)과 천적(天敵)의 관계를 맺어 주었다.
농업 1만년의 역사란 어찌 보면 인간과 잡초와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는 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더욱 모질게 돋아나고 있으니 잡초를 없애기 위한 김매기는 어느 시대에서도 농사의 중심일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농업의 핵심은 화학비료 사용과 제초제의 남용이었다.
그러나 해롭고 성가신 것으로만 여기고 있는 돼지풀, 명아주, 쇠비름, 쐐기풀, 잡초들이 토양 깊숙한 곳으로부터 미네랄을 끌어다 황폐해진 표토(表土)쪽으로 옮겨다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농사는 그놈들이(곤충, 땅벌레, 잡초等)짓는 셈이다.
나와 아내는 그것을 지켜보고 돌보아 주는 것 밖에 한 일이 없다.
자연농법은 땅갈이를 하지 않고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 덧을 4대 원칙으로 하고 있는 농법이다.

그러니 그 어떤 농법 보다도 우리는 자연농법을 이용한 우리네 텃밭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또한 가르침을 받는다.

자연 농법은 자연을 개조, 개량만 하는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배워 마침내는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인위적인 방법들을 버리고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비인위(非人爲)가 가져다 주는 마음밭(心田)의 푸근함 속에서 서당 아이들과 내 두자식의 교육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저절로 크는 아이들, 스스로 할 일하며 살아가는 아이들!
계곡에서의 종일 물놀이로 잘 익은 토마토보다 더 벌겋게 익은 얼굴로 마당을 들어서는 아이들...
저녁 먹기전 함께 둘러앉아 읽는 한학 한문장의 메아리는 춘삼월 충분히 습기는 맞은 개구리들의 개골개골 합창과 너무도 닮았다.
그 어떤 스테레오도 이런 화음을 낼 수 없고 국민가수 이미자도 이토록 자연스러운 노래를 할 수 없으리라
말없이 저녁 식탁을 준비하는 아내.
나란히 놓은 두 개의 앉은뱅이 밥상위에 정성이 뚝뚝 묻어 있는 맛깔스런 식탁!
잡곡 현미밥에 된장국, 물김치, 배추김치,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고추짱아찌, 부추쌈, 꼬들빼기 쌈, 구운생선....
낮의 밭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정직한 밥상, 소중한 자연, 토실토실 웃음 짓는, 해 맑은 여섯 아이들...
해와 달이 붓질해 놓은 수채화가 여기 또 있는 것이다.
이 편안한 밥상은 그 모태(母胎)가 자연 농법의 텃밭이며 그 밭 속에서의 정성스러운 내 아내와 나의 무위지행(無爲之行)은 곧 생활을 단일한 맑음으로 化하고 곧 내 아이들 뿐 아니라 서당교육일 받는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흐르고 있으니 이 모든 이치는 농사짓는 일이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배우고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농사를 짓고 살고자 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을 거스르는 삶과 문명으로서는 심신의 건강도, 행복한 삶도, 지속적인 생존도 보장 될 수 없음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그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 속에서 나온 것이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텃밭에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