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야서당



불가(佛家)의 벽암칠측평창(碧巖七則評昌)에는 줄탁이란 말이 나온다.
알속의 병아리와 어미닭, 자식과 부보, 제자와 스승과의 관한 뜻임은 당연하다.
줄탁은 닭이 알을품은 것과 같으니 새끼 닭이 밖으로 나오고자하여 부리로 씹듯 두드리는 것을 줄(啐)이고 어미닭이 새끼가 나오고자 함을 알고 부리로 씹듯 쪼는 것을 탁(啄)이라 함이니 모든 제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지혜가 뛰어난 선사(禪師)는 줄과 탁을 이루는 근기가 있으면서 줄과 탁을 동시에 이루는 작용을 함께 갖는다고 말한다.
이로써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스승에게 개발(開發)을 청하는 것을 줄에 비유하고 스승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개발하는 것을 탁에 비유하니 이는 차의 기회와 인연이 서로 투합하는 지라 줄과 탁은 동시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儒家)에서도 사람의 계발(啓發)에 관하여 자주 예기하는데 이말 역시 불가의 개발(開發)을 의미하는 줄탁에 가까우니 이는 공자가 말씀하신 바에서 나왔다.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 알려는 마음이 없다면 열어주지 아니하고 애써 말로 표현하고자 하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는다 함이 곧 이 말이다.

가난한 서당을 자랑삼을 순 없다. 하나 물질적 가난함은 스스로를 절제함에는 더할 나위 없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心淸), 몸을 바르게 하고(身淸), 행동을 바르게 하고(行淸)함에는 이것만한 방편이 없다.
이 三淸안에는 내가있고 자식이 있고 가정의 교육 서당의 교육이 있다.
마음속 환하게 등불을 밝히고(敬) 못된 것이 몸밖으로 나오는 것을 잘라내고(義) 지극함으로 들여다보지, 어미 닭이 막 깨나올 알을 정성스럽게 지켜 바라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아직은 어린 내 두 자식, 부모슬하를 떠나 이 먼 곳까지 유학을 와서 고행(苦行)하는 두 학동을 늘 항시 지켜보면서 부모의 모습, 훈장의 모습이 얼마나 성스러운 직분임을 느끼며 살아간다.

살아보니 이 세상세서 가장 즐거움은 책 읽는 것이요(至要莫如讀書)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교육이다(至要莫如敎子)

부모와 스승된자는 항시 아이들을 지켜보아야 한다.
바른마음, 바른 몸, 바른행동으로 탁(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는 자기의 마음, 자기의 몸, 자기의 행동으로 줄(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미닭이 그 계란을 아는 만큼 사랑해서 탁(啄)하고 부모는 그 자식을 아는 만큼 사랑하니 딱 그만큼 탁(啄)한다.

그러므로 나는 삶에서 한번도 안 쓸 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은 삶 그 자체이다.

“그런게 공부야?”
“그런 것은 상관말고 공부나해”

부모나 스승이 자주 말하는 그런 일 가운데는 정말 애써서 제대로 배울 일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벌서 이 글을 쓰다보니 우리집의 락성(樂聲)이 낭랑하다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밝디 밝은 저놈들
그래 바로 그거야!
환한 애비의 웃음으로 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