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야서당



큰 도리가, 대도(大道)가 실시되고 있던 시대(황금시대)에는 세상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내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고, 내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인은 나머지 세월을 즐기고, 젊은이는 그 능력을 발휘해서 활동을 하고, 어린이에게는 따를 사람이 있고, 의지할 데 없는 과부나, 고아, 불구자나 폐인은 보호를 받았다. 사람들은 재물이 땅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주머니에 숨겨 두지는 않았다.
또한 사람들은 여유 있는 노동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일을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사람 사이에 무슨 모략이 있을 리가 없고 도둑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것이 大同, 즉 큰 공동체의 시대였다. 정녕 모든 이들이 禮를 갖추고 있으니 즉 禮가 필요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큰 도리는 이미 실시되지 않는다. 세계는 분할되어 여러 권세에 속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다만 내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고 내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긴다. 그들은 각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재물을 구하고 노동에 종사한다. 따라서 禮와 정의의 원리가 사회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 원리에 따라서 사람들은 통치자와 신하의 신분을 지키고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내외 사이에 화합해서 사는 도리를 가르치고, 제도를 만들어 여러 촌락이 단결해서 서로 의지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 禮가 필요한 시대로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이 禮의 원리를 침해하는 사람을 공적(公敵)이라고 해서 탄핵을 받아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를 가리켜 〈소강〉의 시대, 즉 〈작은 평화의 시대〉라고 부른다.

시경(詩經)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인(聖人)이 세계를 한 가족으로 보고 하나의 국가를 1人으로 볼 수 있는 까닭은(어떤 한 사람의 인정(人情)에 있어서 진실인 것은 모든 사람에 있어서 진실이다) 그가 규칙을 정할 적에 아무렇게나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참으로 인정(人情)을 이해하고 인간의 의무를 명백(明白)하게 하고, 인간에 관해서는 모든 선과 악을 명료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자각이 있기 때문에 규칙을 정할 수가 있다.


그것은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두려움,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그리고 욕심이 일곱 가지로 되어 있다.(태어날 때의 본능이다.)


아버지의 자애로움, 자식의 효성, 형의 아우에 대한 사랑, 아우의 형에 대한 공경, 남편의 바른 행실, 아내의 평화로움, 연소자의 순종, 통치자의 인자함, 신하의 충성, 이것이 사랑의 열 가지 도의(道義)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좋은 것은 일반적 신뢰와 평화이고 인간에게 있어서 나쁜 것은 영리(營利), 강탈, 살인을 위한 싸움이다. 그러므로 성인이나 이상적인 가장(家長)이나 통치자는 禮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과 열 가지 도의(道義)를 영리와 강탈을 위한 싸움을 막을 수가 없다. 음식과 성욕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며 죽음과 가난과 재난은 인간이 가장 미워하는 불행이다. 그러므로 욕망과 불행을 경계하는 마음은 사람의 내부에 깃들어서 그를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런 동기는 마음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보통 때는 바깥으로 표시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사람의 마음을 탐구함에 있어 그 하나로써 전체를 규명할 수 있는 것은 다만 禮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禮의 인간에 대한 관계는 누룩의 술에 대한 관계와 같다. 군자는 그것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소인은 좀 더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나 덕(德)을 지닌 통치자는 인정(人情)의 모든 움직임과 표현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의무와 예의 질서를 함양한다.

인정(人情)이라는 것은 성인이나 덕을 지닌 사람에 의해서 지배되는 밭과 같다. 그는 禮로써 밭을 갈고 의무의 씨를 뿌리고 교육과 학문에 의해서 가꾸어 진실한 인간성을 수확하고 음악에 의해서 그것을 즐긴다.

이 같은 질서가 대순(大順)이며 곧 조화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화, 大順은 禮를 바탕함이며, 곧 禮는 모든 道理의 결실이다.